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단순한 실화 기반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한 개인이 시대와 맞서 싸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고, 관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년 시절과 부림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정치적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인간이 정의를 찾아가는 여정을 조명한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준다. 2024년 현재, 우리 사회는 다시금 민주주의와 법의 의미를 되새길 시점에 와 있다. 그렇기에 ‘변호인’은 단지 과거의 영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서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배경, 실제 사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부림사건과 영화의 실제 배경
‘변호인’은 1981년 부산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 '부림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시 정권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도구로 사용했다. 책을 읽고 토론을 나누던 대학생과 교사들이 ‘용공분자’로 몰렸고, 조작된 증거와 고문을 통해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인권을 짓밟힌 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 사건에 변호사로 참여했던 인물이 바로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노무현이었다. 그는 이미 세무 전문 변호사로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이 사건을 접한 뒤 법이 개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노무현은 재판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웠고, 그의 이념과 철학은 이 시기를 거치며 더욱 뚜렷해졌다. 영화는 이 사건을 ‘송우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각색했다. 이는 단순히 인물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현실을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고 관객의 몰입을 높이기 위한 서사 구조다. 부림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주의에 맞서 싸운 시민사회의 초석이 되었고, 그 의미는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 곳곳에 살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변호인'을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키가 된다.
노무현이라는 인간, 송우석이라는 캐릭터
노무현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평범한 청년이었고, 지방 출신의 가난한 집안에서 고시를 준비하며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영화 속 '송우석'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법률 자문과 세무 소송에 몰두하던 현실적인 변호사였다. 하지만 부림사건이라는 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정의와 법의 본질을 고민하게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드라마틱한 각색이 아니라, 실제 노무현이 살아온 궤적과도 맞닿아 있다. 노무현은 부림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노동자 인권 사건, 언론 자유, 정치 개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은, 그저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신념이었다. ‘변호인’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송우석이라는 캐릭터가 특정 인물의 찬양을 넘어, 시대와 불화하며 성장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는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불합리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용기를 누군가는 내야 한다. 송우석은 그런 인물의 상징이며, 노무현은 그런 삶을 실제로 살아낸 인물이다.
2024년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메시지
영화 ‘변호인’이 처음 상영된 2013년에는 사회 전체가 정권 교체와 정치개혁, 시민의 권리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2024년 현재, 우리는 다시금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지금도 여전히 권력은 약자를 향해 무자비할 수 있고, 사람들은 제도보다 권위를 두려워하는 사회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변호인’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의는 언제나 대다수의 침묵 속에서 외롭게 시작된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얼마나 그 정신을 지켜내고 있을까? 어떤 정책이 오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이 누구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가다. 이제 '변호인'은 단지 노무현을 기억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시대에는 송우석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인물을 응원하고, 지켜주며, 때로는 직접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변호인’은 과거를 다룬 영화지만, 지금도 여전히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법과 정의, 인권, 그리고 한 사람의 용기가 만들어내는 변화.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단지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우리 스스로 변호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